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중간소득함정’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한 국가의 경제가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 성공적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하더라도 ‘중간소득’수준에 이르면 성장이 서서히 멈추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경제는 어떨까? 한국은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성장의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정체 현상이 최근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이상 추세적으로 심화되어 온 위기라는 점이다. 또 대내외적 환경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고,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공감대를 마련한다면, 고도 상승을 멈추어가는 로켓을 다시 차오르게 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산업이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은 널리 퍼졌지만, 여전히 실행의 프레임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개념설계는 ‘존재하지 않던 그 무언가를 그려내는 것, 즉 백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며, 비즈니스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설계 역량은 높은 수익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개념설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개념설계를 받아서 실행하는 역량과는 매우 달라서 시행착오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선진 기술을 모방하여 추격하는 단계에서 체화된 사고방식과 관행이,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정의하고 만들어내는 개념설계 역량의 확보에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지를 지적하고, 축적의 전략 - ① 축적의 경험을 담는 궁극의 그릇, 고수를 키워라. ② 아이디어는 흔하다, 스케일업 역량을 키워라. ③ 개념설계를 담는 그릇, 제조현장을 키워라. ④ 고독한 천재는 없다, 사회적 축적을 꾀하라. ⑤ 중국의 경쟁력 비밀을 이해하고 이용하라. - 을 제시한다.
또 한국이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언을 4가지로 압축해서 제시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축적의 형태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고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행착오의 귀한 경험이 결국 사람에게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축적의 전략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스몰베팅 스케일업 전략’을 모든 의사결정의 기본 틀로 삼아야 하며, 그동안 즐겨 사용했던 선택과 집중, 일시적 단기동원과 같은 의사결정 방식을 버려야 한다.
셋째, 축적을 뒷받침할 사회시스템의 측면에서는 ‘위험공유 사회’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전적 시행착오의 경험이야말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재이고, 따라서 그 위험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같이 나누어 감당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문화의 측면에서는 ‘축적지향의 리더십’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한국처럼 실행지향의 틀이 깊이 각인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시행착오를 품어주고, 장기적 시각으로 축적을 장려하는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구성원 모두의 동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