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와 도산 안창호의 첫 만남은 1905년 일본 동경에서였다. 이광수는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뽑혀 동경에서 수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경의 한 연설회장에서 안창호의 연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창호의 확고한 민족관과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광수는 조선 청년독립단에 가입하게 되고,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어 중국 상해로 탈출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안창호를 만나 안창호를 보좌하며 임시정부 일에 참가하게 되고, 안창호가 만든 《독립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 되어 애국적, 계몽적 이념을 담은 많은 글들을 쓰게 된다. 그리고 1937년 안창호와 이광수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잡힌다. 그 일로 안창호는 감옥에서 병을 얻어 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광복 후 이광수는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직을 맡았던 일로 반민법에 의거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된다.
전학성 - 기술과 비지니스 통합 파워 러닝 코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27년간 IT 융복합 분야 연구개발 및 기술사업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유통, 신사업,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스마트 기술 도입과 관련한 기업컨설팅을 제공하며, 기술과 사업을 합친 액션러닝 분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셀프 코칭 개념과 액션러닝을 결합한 프로그램과 코칭북 저작방법을 개발하여 비지니스 관련 다양한 분야에 컨설팅과 코칭북 집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