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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

영어 문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한국인처럼 강박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영어 문법에 대해서는 그런 강박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한국어 문법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문법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영어 문법에 대해 그러하듯이 말이다. 왜 그럴까? 이미 온몸으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각에도 그 나름의 ‘문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무심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주는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익힌 탓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속담이나 속설은 그런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확고한 ‘생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
영어 문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한국인처럼 강박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영어 문법에 대해서는 그런 강박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한국어 문법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문법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영어 문법에 대해 그러하듯이 말이다. 왜 그럴까? 이미 온몸으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각에도 그 나름의 ‘문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무심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주는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익힌 탓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속담이나 속설은 그런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확고한 ‘생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더도 덜도 말고 중간만 가라.”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 “사람은 다 저 알아주는 맛에 산다.”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부자는 3대를 못 간다.”

‘생각의 문법’은 이성과 원칙에 관한 문법이라기보다는 감정과 고정관념에 관한 문법이며, 명시적으로 공인된 문법이라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실천되는 문법이다. 각기 그 나름으로 그럴 만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을망정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으며 적용해서도 안 될 ‘상식’이다.

사람들마다 생각의 내용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 다른 ‘생각의 문법’을 갖고 있지만, 우선 ‘최대공약수’에 해당하는 공통의 문법을 다뤄 보자! 그런 공통 문법을 연구하는 학문 중의 하나가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추상적 이론을 숭배해온 탓에 현실과 동떨어진 주류 경제학과는 달리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태에 주목하는 경제학이다. 물론 우리는 합리적일 때도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이 늘 합리적이진 않기에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의 문법을 탐구하는 일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문법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깨달은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고, 더 나아가 행동까지 바꿀 수 있다.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더라도, 자신의 문법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확신’이나 ‘신념’을 소중히 여기지만, 우리와 갈등을 빚는 사람의 ‘확신’이나 ‘신념’은 ‘편견’이나 ‘고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중 기준의 원리를 존중한다면, ‘확신’은 소통의 적(敵)일 수 있다는 점에 눈을 돌려 보는 건 어떨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확신’이나 ‘신념’ 없인 살아가기 어려운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며 반드시 뭔가를 믿어야만 한다. 신념에 대한 좋은 토대가 없을 때에는 나쁜 것이라도 일단 믿고 만족해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최고로 선량한 사람은 모든 확신을 잃어버렸고 최고로 악한 자들은 어두운 열정에 몰두하나니”라고 노래했다. 미국 경제사가 데이비드 란데스는 『국가의 부와 가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광신주의, 당파주의, 적개심이 더 만연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물론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아니, 우리는 70년 묵은, 게다가 현재진행형인 국토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기에 더하다고 볼 수 있다. 분단 갈등에 더해 정치 갈등ㆍ빈부 갈등ㆍ지역 갈등ㆍ세대 갈등 등 온갖 유형의 갈등이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짓누르고 있으며, 악한 사람은 물론 선량한 사람들까지 갈등을 먹고 자라는 증오의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확신에 찬 ‘갑질’을 해대고 있으며, 그걸 자연의 법칙이자 사회의 법칙으로 여기는 신념에 투철하다. 이쯤 되면 확신과 신념은 ‘공공의 적’이라 할 만하다. 확신과 신념에 대해 그것이 생겨나게 된 근원과 과정을 탐구하는 것, 그게 바로 ‘생각의 문법’ 연구다.
전학성 - 기술과 비지니스 통합 파워 러닝 코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27년간 IT 융복합 분야 연구개발 및 기술사업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유통, 신사업,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스마트 기술 도입과 관련한 기업컨설팅을 제공하며, 기술과 사업을 합친 액션러닝 분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셀프 코칭 개념과 액션러닝을 결합한 프로그램과 코칭북 저작방법을 개발하여 비지니스 관련 다양한 분야에 컨설팅과 코칭북 집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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