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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과 이방원은 사대부 중심의 세상과 재상정치와 왕권 중심주의자 전제정치를 각각 표방하였다. 조선의 시조는 이성계이지만 그는 형식적 시조에 불과했다. 실록의 기록에 에둘러 표현한 것을 바꿔 보면 실질적 시조는 정도전이었다. 조선 건국을 향한 아이디어나 이념 등은 정도전에게서 나왔다. 〈조선경국전〉과 한양으로의 천도와 궁궐의 건설, 도로의 구조, 사대문 안의 지명들 역시 모두 정도전에게서 나왔다. 유방(한나라 시조)이 장량(유방의 책사)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쓴 것이라는 고사를 직접 말한 정도전에게는 “이성계가 정도전을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를 쓴 것”이었을 뿐이다. 이방원이 이런 정도전을 반드시 해치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정도전에게도 정치적 ..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과 이방원은 사대부 중심의 세상과 재상정치와 왕권 중심주의자 전제정치를 각각 표방하였다. 조선의 시조는 이성계이지만 그는 형식적 시조에 불과했다. 실록의 기록에 에둘러 표현한 것을 바꿔 보면 실질적 시조는 정도전이었다. 조선 건국을 향한 아이디어나 이념 등은 정도전에게서 나왔다. 〈조선경국전〉과 한양으로의 천도와 궁궐의 건설, 도로의 구조, 사대문 안의 지명들 역시 모두 정도전에게서 나왔다. 유방(한나라 시조)이 장량(유방의 책사)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쓴 것이라는 고사를 직접 말한 정도전에게는 “이성계가 정도전을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를 쓴 것”이었을 뿐이다.

이방원이 이런 정도전을 반드시 해치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정도전에게도 정치적 결단과 이념 등이 다른 이방원은 위협이 되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이방원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경계했다. 조선건국이라는 대업을 위해 함께 손을 잡았지만 언젠가는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정도전과 이방원 중 살아남은 이방원은 역사에 남았고 정도전은 조선 후기까지 역적으로 몰렸다.

왕을 견제하고 백성을 직접 돌보는 사대부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이념은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사상적 틀부터 달랐지만 둘 다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는 바탕은 같았다. 조선 초기 100년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었던 시기라고 평가받는 것은 정도전과 이방원이라는 존대한 두 인물이 동시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전학성 - 기술과 비지니스 통합 파워 러닝 코치
커리어앤피플 액션러닝센터의 대표러닝코치를 맡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27년간 IT 융복합 분야 연구개발 및 기술사업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기술과 사업을 합친 액션러닝 분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셀프 코칭 개념과 액션러닝을 결합한 프로그램과 코칭북 저작방법을 개발하여 비지니스 관련 다양한 분야에 코칭과 코칭북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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